독도의 지명 연혁(자료 독도박물관)
독도는 예로부터 우산도, 삼봉도 가지도, 석도 등으로 불려왔다.
지 명 |
내 용 |
우산도 (宇山島) 512년 |
독도의 명칭으로 가장 오랫동안 사용. 조선 태종 때 부터 '우산'이라는 지명이 기록에 나옴. 「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옛 문헌 속에 동해상의 두 섬을 우산(宇山)과 무릉(武陵) 혹은 우산과 울릉 등으로 표현하고 있어 독도를 '우산'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음. 독도는 천산(千山), 간산(干山), 자산(子山) 등으로도 표기됨. |
삼봉도 (三峰島) (1476년) |
조선 성종 때 사용한 명칭. 「 성종실록」(1476년)에는 "섬 북쪽에 세 바위가 나란히 있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이 벌려 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 작은 섬이 있는데 사방 바닷물이 통한다."라고 하여 지근의 독도 모습을 기술. 작은 섬과 암석은 동도와 서도 사이에 무수히 흩어져 있는 바위들을, 복판섬은 서도를, 복판 섬 서쪽의 작은 섬은 지금의 탱크바위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 |
가지도 (可支島) (1794년) |
1974년(정조18년)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의 울릉도 보고서에 "갑인년 4월 26일에 가지도(可支島)에 가보니 가지어(可支漁)가 놀라 뛰어나왔다."는 내용에서 확인. '가지어'는 물개의 일종인 '강치'의 우리말인 '가제'를 음역하여 부른 것으로, '가지도'란 강치가 많이 사는 섬이라는 뜻. 실제로 독도에는 '강치'가 많이 서식하였으며, 서도 북서쪽에 '큰가제바위'와 '작은가제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있음. |
석도 (石島) (1900년) |
석도는 대한제국이 1900년(고종 37년) 10월 25일에 칙령 41호에서 울릉도를 울도로 바꾸고 울도의 관할구역을 '울릉 전도(全島)와 죽도(竹島) 및 석도(石島)'로 규정하면서 처음 등장. 여기서 죽도는 현재의 울릉도 근방의 작은섬 '죽도'이고 석도는 '독도'를 가르킴. 석도가 독도를 지칭하는 것은 석도의 한글 표현이 '돌섬'이고, 돌의 전라도 사투리가 '독'인 점을 감안하면 석도가 독도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음. |
독도 (獨島) (1906년) |
1906년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해 공식적으로 처음 사용.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일본군함 나이타카(新高)호의 1904년 9월 25일자 보고에 의하면, "리앙코르트 바위를 한국인들은 '독도(獨島)'라고 쓰고, 일본 어부들은 '리앙꼬도(島)'라 부른다."는 기록이 있어 독도하는 명칭은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 |